[2020.05.20.] 추신: 커뮤니티를 향한 문장들2

추신: 커뮤니티를 향한 문장들2

자긍심의 언저리에서

대책본부는 출범부터 지금까지 자발적 검진을 독려하며 혐오는 어떤 식으로든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외쳐왔습니다.

하지만 독려하는 입장에서도 온전히 떨쳐내지 못하는 저항감이 있습니다. 왜 우리는 서로에게 용기를 내라고 요청 해야만 할까요. 질병 위기 속에 성소수자라는 이름이 바깥에 노출되면 불이익을 받으리라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용기는 책임의 무게를 달고 사회적 소수자의 몫으로 부여됩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인권운동은 오랫동안 자긍심을 주문처럼 외쳤지만 실상 나를 설명하는 언어는 삶의 리스크로 작동하기 쉬웠습니다. 오랜 시간 우리는 드러내기보다 숨기는 편이 편하다고 배웠습니다. 성소수자로서 나를 긍정하고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완결된 드라마가 될 수 없었습니다. 젠더이분법을 거스르고 시민권의 기준을 거부하며 한편으로 일시적이고 쾌락적인 만남을 추구하는 공동체의 토양은 공동체 안에서도 끝나지 않을 불화와 적대의 대상이 되고, 더러는 숨겨야 하는 또 다른 사각지대로 남기 때문입니다.

성소수자들의 만남 장소가 표적이 되고 가십이 되는 건 우리가 만나고 관계 맺는 일상이 위험한 정보값으로 휘발되고 쉽게 부정당할 수 있다고 풀이되기도 합니다. 나의 이름은 단어뿐인 공백으로 존재하고 그마저 혐오의 대상이 되거나 소문과 가십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언제 누구에게라도 호출되어 조리돌림 당하고 모욕당하기 쉽습니다. 성소수자는 줄곧 부정되고 미뤄져온 합의 대상의 존재로 그려집니다. 사회의 위기를 부추기는 불쏘시개로 전락하여 언제든지 소환될 수 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사회구성원으로서 위치는 불평등하게 주어집니다. 이 부당함이 당장 사라져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용기의 무게를 나 혼자 짊어져야 하는 건 누구라도 버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도 자극적인 확진자 동선과 뉴스 속에서 우리는 클럽을 찾은 이들이 가지고 있을 삶의 지층들을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자극적으로 잘려나간 단어들 속에는 오랜만에 안부를 나누는 친구들이 있고, 몇 년 만에 한국을 찾은 이의 새로운 감회도 있을 것입니다. 입원과 입대를 앞둔 이가 있었고, 외로움을 끝내 채우지 못해 밤새 만남을 전전한 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 서사들은 그동안 학문과 운동의 언어로만 근근히 전해오거나 도시전설처럼 타임라인과 썰로 미끄러지고 줄곧 잊혀져온 이야기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얼마 전 게시판과 SNS에는 클럽 입구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연휴가 지나고 여전히 잠겨 있는 문은 계란세례로 얼룩이 가득하지만, 응원의 문장들도 단단하게 붙어있었습니다. 증오의 얼룩과 응원이 나란히 붙은채 침묵하는 문은 지금의 우리 모습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을 지나면서 우리는 연결되어 있음을 체감하지만, 겨우 부를 수 있는 우리의 영토는 애시당초 취약함 위에 구축되어 왔다는 것 또한 확인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시련은 공동체에게 떨치기 어려운 아픔을 남기지만, 깊은 침묵은 그간 납작해지기를 강요하는 규범과 질서들을 거스르며 성소수자로서 살아온 삶의 지층을, 우리를 연결시켜 온 공동체의 무게를 가늠케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는지, 무엇이 우리의 연결을 취약하게 만들었는지 재난의 터널을 지나면서 강렬하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지금 서로에게 중요한 지지대가 되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취약함 속에서도 우리를 지탱하는 감정과 손길들이 여전히 반짝이며 지금의 어둠을 밝히고 있음을 곳곳에서 목도합니다.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때는 좋았다는 향수만이 남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을 지나면서 우리가 지금 느끼는 분노와 절망, 외로움과 체념은 무엇인지에 대해 살피고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을 지키고 서로의 곁을 지킵시다. 우리는 더 많이 떠들고, 더 많이 연결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