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2. 언론브리핑]

[언론브리핑]

 

  1. 혐오 광고는 국민일보의 꼼수다

 

코로나19 이태원 확진자가 나온 직후 국민일보의 유영대기자는 단독보도를 전면에 달며 ‘게이’업소를 명기하고 동성애자들이 만나는 공간에 집중했습니다. 백상현기자는 한 술 더 떠 게이 포털사이트 게시판의 글들을 그대로 옮겨 붙여 기사로 내면서 남성 동성애자의 활동 패턴을 알아야 코로나19를 막는다는 해괴한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국민일보 노조의 규탄성명이 올라온 직후 해당 언론사의 노골적인 성소수자 혐오선동은 다소 주춤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국민일보는 이후에도 차별금지법 반대 기사를 싣는가 하면, 성소수자 혐오를 멈추라는 요구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식의 논지를 수차례 펴내며 혐오의 야욕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나아가 기자들의 선동이 내부적으로 견제 받는 동안 염안섭과 소강석 목사, 한휘진 서울시청 공무원등 혐오 인사들의 칼럼을 싣는 등 이들은 동성애 반대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국민일보는 급기야 광고를 활용하여 혐오 여론을 전파합니다. 21일 뉴스앤조이 기사 ‘돈 되면 어떤 광고든 다 받아 주는 <국민일보>?…”광고는 영업, 우리는 굶어 죽으라는 건가”’는 국민일보가 싣고 있는 광고 뿐 아니라 이러한 광고들을 싣고 있는 언론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성소수자 반대광고 뿐 아니라 문제적인 목사를 지지하는 광고를 싣는 국민일보의 행태는 지면 낭비일 뿐입니다. 기사 속에서 인터뷰 내용이 언급된 최진봉교수(성공회대)는 ‘이 언론은 돈이면 다 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합니다. 이는 좀 더 정확한 지적이 필요해 보입니다. 국민일보가 좇는 돈이 해악이라 지탄받는 것은 해당 광고비가 비리와 혐오선동의 온상인 교회와 폭력적인 목사, 그리고 그들의 추종자에게서 나오는 자본을 바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늦게나마 혐오여론을 조장하는 방향성에 반기를 드는 내부 견제집단이 있음을 확인한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책본부는 혐오선동의 나팔수 역할을 놓지 않는 국민일보를 강력하게 규탄하며, 동시에 안팎에서 국민일보의 방향에 반기를 들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언론노동자들을 지지합니다.

 

 

  1. 질병의 위기 속 언론의 역할은 황색저널의 혐오선동 대신 예방의 조력자가 되는 것

코로나19 이태원 확진자 증가 이후 언론들은 기존에 집중했던 성소수자 인권과 문화를 둘러싼 찬반 프레임을 넘어 게이 남성들의 행태와 이들이 모이는 장소의 특성들을 다루는데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의 접근이 피상적일 뿐 아니라, 전염병 전파의 온상으로 성소수자 문화를 지목한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성소수자들이 만나는 장소와 문화를 버젓이 전시하는 기사는 결국 질병 예방을 위해 환자의 동선과 신상을 대중에게 낱낱이 공개함을 미덕으로 삼으며 성소수자들의 집단적인 사회활동을 전면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갑니다.

 

이는 성소수자 문화가 한국사회의 제도와 사회적으로 주변화 되는 성소수자의 위상 속에서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전반적인 유흥문화의 구조 위에 발생하는 것임을 무시한 채 성소수자 문화만을 대상화하고 성급하게 갈라냅니다. 이들의 논조는 성적 보수주의와 인종주의 등 정상성의 규범을 강화하고 그 속에서 질병을 단속과 처벌의 근거로 삼는다는 점에 심각한 우려를 갖게 합니다. 질병에 대한 낙인으로 확진판정을 받은 주민을 배제하도록 조장하고 방기하는 태도는 사회적 소수자뿐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감시하며 배제하도록 압박하게 된다는 점에 사회적 해악이기도 합니다.

 

한겨레신문에 기고된 한채윤 활동가의 5월 21일자 칼럼 ‘언론은 방역의 방해자인가’는 언론의 접근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이러한 문제가 질병예방 뿐 아니라 사회 공익차원에서도 어떻게 부정적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는지를 조목조목 분석합니다. 나아가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 저널은 어떠한 태도와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합니다. 그에 따르면 바이러스는 성적 지향을 구분하지 않으며, 자발적인 예방을 위해서는 이들을 낙인찍기보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 언론은 동선을 경쟁적으로 공개하는 지자체들을 경계하는 중요한 역할을 가질 수 있습니다. 22일자 경향신문 기사 ‘아우팅 막는다더니…일부 지자체, 확진자 특정 가능한 ‘동선 공개’’는 예의 중요한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질병의 방역 속에서 정보 노출로 피해 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는 것 또한 언론의 중요할 역할일 것입니다.

 

많은 언론들이 예방을 위한 저널리즘의 방향을 애써 외면하면서 성소수자와 이주민의 정보를 노골화하고 이들을 도덕적 해이의 프레임으로 솎아내는 것을 정의 구현인 양 생각하는 태도가 너무도 아쉬운 요즘입니다. 우리는 공익을 위한 언론의 저널리즘 실천을 요구합니다.

 

 

  1. 이제는 우리가 찜방을 이야기해야 할 때

 

코로나19는 전파 특성상 신체 간 밀접한 접촉을 경계하도록 만듭니다. 이는 예방에 있어 물리적 거리두기 뿐 아니라 사회적 거리두기까지 요청하는 근거로 작동합니다. 그것은 또한 거리두기에 소홀한 타인을 경계하는 경향으로 연장됩니다. 말하자면 질병을 바탕으로 특정 집단과 장소를 혐오하고 증오하는 선동의 먹잇감이 되는 것입니다. 

 

이태원 확진자 증가 이후 많은 언론들은 게이 사우나, 소위 찜방이라 불리는 장소에 주목했습니다. 게이들이 서로 만나고 모인다는 사실조차 낯설어하는 여론 속에서 성관계를 갖는 구체적인 장소가 가까이 실존한다는 것은 놀라움과 동시에 비난하고 낙인찍기 너무도 쉬운 조건을 형성합니다.

 

하여 많은 언론들은 앞 다퉈 르포와 단독 취재의 소재로 찜방을 다뤘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휴게실과 다르지 않은 공간, 콘돔과 젤이 있어 세이프섹스가 장려되는 공간, 가벼운 터치와 눈길을 주고받으며 반응이 있으면 관계를 하고 거부하면 다른 방으로 가는’ 공간은 새로울 것도, 문란할 것도 없었습니다. 단적으로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의 22일 경향신문 칼럼 ‘방역당국은 섹스를 금하라’는 머니투데이의 르포를 살피며 결국 찜방은 ‘문란은 고사하고 착해 빠졌’다고 평합니다. 5년 묵은 르포를 보면서 드는 ‘실망감’을 가장 명확하게 표현한 문장으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찜방에 대한 관심이 이토록 과열된 것은 단지 밀접접촉이 빈번한 장소의 성격상 감염병 예방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커뮤니티에서도 쉬쉬해온 찜방은 외부의 많은 언론들로 하여금 황색저널리즘의 저열한 논점을 들이대기 용이한 조건을 갖습니다. 여기에는 온갖 허무맹랑한 판타지와 망상들이 남발합니다. 그리고 성적 보수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단속과 금지의 가치판단이 금세 차고 들어옵니다. 저들의 문장으로 오역 성소수자의 문화는 부정적으로 평가절하되고 편견에 사로잡히면서 성적 낙인의 순환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하여 저들의 입을 통해 낙인과 오욕의 대상이 되어버린 찜방을 우리의 언어로 다시 가져와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찜방이 일부 성소수자들만이 가는 공간, 성소수자 당사자들도 싫어하는 공간이라고 방어하는 것은 결국 정상과 비정상,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의 위계를 인정해온 구조를 내부에서 반복하는 것일 뿐입니다. 찜방은 흔한 인상비평처럼 무법지대가 아니며, 무조건 자유로운 관계가 이뤄지는 공간도 아닙니다. 익명성과 일시적인 만남이 빈번하게 이뤄지지만 꼭 그런 관계만 있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찜방은 안전한 성관계를 위한 장치와 약속들이 배치된 동시에 나이와 체형, 질병유무 등의 위계와 기준이 여전히 작동합니다. 폐쇄적 공간임에도 여기에는 사회의 복잡한 위계와 관계들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음지화된 공간이라고 무조건 양지로 끌어내야 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음지의 공간이기 때문에 침묵에 부쳐진 채 단속되고 노출되기만을 기다리며 숨는 것 또한 옳은 방향은 아닙니다. 일련의 긴장 속에서 찜방의 이야기는 시작될 것입니다. 어플로 사람을 만나면서도 찜방을 찾는 이유는 무엇인지, 여기에는 어떤 취약함이 있으며 그로부터 어떤 쾌락이 실천되는지, 이러한 쾌락은 어떤 위계 속에 구속되거나 일탈하는지, 그 안에서 어떤 성적 권리와 실천들을 세공할 것인지, 나아가 코로나19 이후에 찜방과 같은 공간들은 어떤 변화를 겪을지 이야기 나누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결국 성적 보수주의의 함정을 경계하며 우리가 그토록 호명해온 한국사회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다시 읽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2020.05.22

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 대책본부

 

 

 기사 링크

[뉴스앤조이] 돈 되면 어떤 광고든 다 받아 주는 <국민일보>?…”광고는 영업, 우리는 굶어 죽으라는 건가”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0696

 

[한채윤의 비온 뒤 무지개] 언론은 방역의 방해자인가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45950.html#csidx9880fe5034d659c8c55234bae1eb0bb

 

[경향신문] 아우팅 막는다더니…일부 지자체, 확진자 특정 가능한 ‘동선 공개’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005202159025#csidx17b27e8ce7b5636b113fcc279cfef22

 

[경향신문] 방역당국은 섹스를 금하라

https://m.khan.co.kr/view.html?art_id=202005220300025&code=990100#c2b